새벽에서 황혼까지,( 서양문화사 500년 )



매우 오랜만에 포스팅이다 .

맨날 서점이나 도서관가면 가면 경제책만 드려다보니..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모 사이트에서 어느분이 다 읽으시고 뿌듯해 하는걸 보고 나도 그냥 집어버렸다.

시립도서관에서 빌렸는데 기간이 2주란다 -_-; 3일이면 읽겠지 했는데 양이 꽤 되더라.;;

결국 절반보고 반납해버렸다...ㅜ.ㅜ 연장하려 했지만 대출증을 집에 놀고 갔더랬다..OTL...

에효.;; 이노무 정신머리를 탓하며....걍 반납하고 집으로 터벅터벅......




흐음 이책을 절반보는동안... 중간쯤..읽을때면 앞내용이 기억이 안나더라.;;

뭔 사람들이 그리 많이 나오는지........

루터부터 시작해서...인문주의자들 르네상스 사람들까지 보고 막 청교도에 대해 나오던때에..

반납해버렸지........다시 빌려야겠다.. -_-

문학사라는 재미없는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잘 읽혀지더라......나중엔 기억이 안나서 문제였지만.

나름 재미도 있었고 익히 들어본 이름외에 전혀 생소한 인물들도 많이 나오고...;



이번주말에는 꼭! 도서관가야지.;;;

by 곽MANIA | 2007/04/11 11:03 | | 트랙백 | 덧글(0)

풍자 만화 ! '다음날 조중동은 ....' 출처: 서프라이즈

 yoo란 분이 만드셨다는데 , 그림도 좋고~ 내용도 잼나고~

 

원래 이게 몄줄짜리 댓글유머였다는데... 그림이 더 잼있는듯,

 

나름 일리있는 내용이고 친노분들이면 완전공감하는 내용,

 

뭐 나도 조중동 신문은 쳐다도 안봐.

 

 

수 1편

 

예수 2편

 

석가 1편

 

석가 2편

 

한석봉 편

 

 

by 곽MANIA | 2007/01/11 17:42 | 정치 | 트랙백 | 덧글(0)

우리 개천의 그 많던 월척은 다 어디로 갔을까?(펌)

출처는 SkepticalLeft 오돌또기님~

참.......위 사이트는 재밌는 내용도 많고 유익한 내용도많고..

그중 낚시라는 일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사회과학 이론으로 설명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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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척이란?

낚시에서 낚은 물고기가 한 자가 넘음. 또는 그 물고기 (네이버 사전)

대략 길이가 30cm가 넘으면 월척이라고 쳐 주는데, 이렇게 생겼다...-_-



이미지 출처: 플리커


꽤 큰넘이긴한데, 사실 세상은 넓고 낚을 월척은 널렸다.

인터넷으로 건져 올린 월척 하나만 보자....



(이미지 출처)

구글에서 건져 올린 프랑스 잉어 (carp)다.  잉어는 원래 아시아산이고 이게 영국, 유럽이나 북미로 넘어간 거다.  왜 이 말을 하냐면, 우리나라 잉어라고 원래부터 체급이 플라이급이고 프랑스 잉어라고 헤비급인 건 아니라는 소리를 하기 위해서다.  

그럼 왜 우리나라 강, 저수지, 호수에는 이런 대어가 없는걸까?

우리의 경우는 낚시꾼이 잉어가 미처 다 자라기도 전에 잡아서 매운탕거리로 쓰기 때문에 대어가 자랄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는 (아는 게 이 정도라서 다른 나라들도 있겠지만...) 낚시꾼이 대어를 잡으면 사진을 찍으며 한 껏 기분을 내고 뽀뽀 한 번 해주고 다시 방생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 잉어에게는 패자부활전이 없어서 낚이면 잉어인생 종치는 거고, 북미나 서유럽 잉어는 낚여도 다시 생존의 기회가 주어지니 몇 차례의 패자부활을 거쳐 저런 대물이 탄생하는 거다.  그 덕에 그쪽 낚시꾼들은 저런 넘을 건져올리는 짜릿한 손맛을 너도나도 맛볼 기회가 많다.


공유지의 비극 그리고 낚시터의 비극

잘 알려진 사회과학 개념 중에 공유지의 비극 (tragedy of the commons) 라는 게 있는데, 마을 공유의 목초지를 마을 사람들 아무나 제약없이 쓰게 하면 그 목초지는 머지않아 황무지가 되고만다는 이야기다.  목초가 공짜니까, 사람들은 개나 소나 가릴 것없이 더 키우려할테고, 그런 이익을 누구나 다 좇다보면 목초지는 남아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비극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낚시터 (강이건, 호수건, 저수지건, 바다건)도 이런 비극적 현장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낚시터의 비극이라고 불러도 될 것같다.  바다의 어족이 멸종될 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오는 걸 봐도 이게 그냥 지나쳐도 될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대표적 해법은 공유지에 재산권을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꼭 사적 재산권일 필요는 없다).  멸종위기에 처한 코끼리를 구하기 위해 몇몇 아프리카국가들이 상아가 거래되는 시장을 불법화했다고 한다.  문제는 상아시장이 지하시장화되면서 값이 몇 배가 뛰었고, 이에 따라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음성적 코끼리 사냥은 더 활개를 치게 되면서 오히려 코끼리가 절멸위기에 처하게 된다.  잠비아는 독특하게 코끼리 사는 곳을 공원화하고 사파리를 즐기는 관광객들에게 높은 요금을 매겼다.  벌어들인 수입은 그곳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했더니, 주민들이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불법사냥꾼을 감시하더라는 거다.  그 전에는 코끼리가 자신의 농사를 방해하는 경쟁자였기 때문에 그곳 주민들은 코끼리사냥에 우호적이기까지 했다.  어쨋든 사파리 덕에 잠비아는 코끼리 보호에 성공한다.  코끼리를 보호하는 데 물질적 이해관계를 설정하여 효과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공유자산인 코끼리를 사냥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물고기는 코끼리가 아니라는 것.  재산권을 설정하기가 만만치 않다 (호수나 저수지는 사정이 나은 편이고, 강이나 바다는 재산권 설정이 어려운 쪽이다.  바다에는 국경이 있지만 물고기에게는 국적이 없다 -_-).  유료 낚시터가 존재하긴하지만, 전국의 강과 바다를 유료낚시터화하기는 어렵다.  낚시라이센스를 판다고 해도 물고기를 슬쩍 가져가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낚시터의 비극을 해소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는 낚시문화를 만들어서 보이지 않는 정신적 압력을 낚시꾼에게 가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이 여기에 성공한 케이스다.


낚시문화의 충돌: 먹느냐... 방생하느냐 (A Fish Culture Clash: To Eat or Release? 유료기사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낚시문명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한다.  글로발라이제이션의 흐름 속에서 이민자가 급증한 영국의 낚시터는 월척급 잉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은 잉어에게 공포의 시간이며 앵글로 낚시꾼에게는 짜증나는 시즌이다.  동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폴랜드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칠면조대신 잉어를 요리해 먹는 풍속을 가졌다고 한다.  문제는 폴랜드 이민자들이 크리스마스시즌이 오면 잉어노획에 나서면서 시작된다.  이들에게 잉어낚시는 레저라기 보다는 가족을 즐겁게 하기 위한 미션이기 때문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물이 동원되고 라이플 총까지 쓰인다.



이미지 출처: 플리커

이렇게 방생하는 앵글로 낚시꾼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할 수도 없다. 어차피 주인없는 물고기니.  (폴랜드 낚시꾼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크리스마스날 잉어스프와 요리는 그들의 전통 문화이고 잉어는 영국시장에 거의 나오지 않으니 낚시말고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러니 문명의 충돌이랄 수밖에).

이런 <영국식 낚시문명의 충돌>은 통상적 공유지의 비극과는 다른 게임구조를 갖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공유지의 비극에서는 마을주민들이 모두가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가고, 모두가 배신하면 모두에게 손해가 간다.   누구는 협력하고 누구는 배신하면 배신한 놈만 이득을 보고 협력한 놈은 바보된다. 그래서 비극 (목초지의 황무지화)로 귀결된다.


앵글로낚시꾼은 잉어를 먹는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에 잉어를 먹지 않으므로, 딱 두 가지 경우의 수만 남게 된다.

1) 앵글로는 잉어를 먹지 않고, 폴리쉬는 잉어를 먹는다

      --  이 경우 폴리쉬는 그들의 크리스마스 전통과 식문화를 보존할 수 있지만 앵글로 낚시꾼은 월척의 기회가   줄기 때문에 불만  (잉어도 불만)

2) 앵글로도 먹지 않고, 폴리쉬도 먹지 않게 만든다
     -- 이 경우 앵글로 낚시꾼은 만족하겠지만, 폴리쉬는 자신의 전통을 포기해야 하니 불만 (잉어는 해피)




잉어요리: 플리커


물론 홧김에 앵글로도 잉어를 다시 먹기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자신들의 식문화를 바꿔야하는 cost가 존재하고 더 큰 문제는 잉어가 남아나기 어렵다는 사실. 잉어가 최대의 피해자가 된다.

영국 낚시문화의 충돌은 공유지의 게임구조와는 판이하게 다른 구조의 공유지의 비극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개천에서 저런 월척을 낚아 올릴 수 있으려면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

by 곽MANIA | 2007/01/09 10:13 | 경제 | 트랙백 | 덧글(1)

크리스마스......개그스테이션?




25일 여친이랑 홍대에 개그스테이션(?) 공연을 갔더랬다..

가는길 헤매다가 겨우 찾아서 표받고..시간이 좀남아..시간좀때우다

안에 입장하니 소극장이라 많이 좁긴 하더라.;;

2:30 분인가 공연했는데...공연내내 미친듯이 웃고 소리질르고..

TV에서만 보다가 직접 앞에서 하는걸 보니깐 진짜 배꼽 빠지는줄 알았다.

염장커플석으로 여친이랑 둘이 5만원짜리 표였는데도 하나도 안아까워!!

암튼 강추!

 

by 곽MANIA | 2006/12/26 14:32 | 문화 | 트랙백 | 덧글(0)

클린튼들의 이야기

웹상에서 우연히 알게된 어느 교수님의 글....

그분의 글을 읽다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뿐........

퍼온곳은 skepticalle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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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튼들의 이야기 I

한국인들만이 아니라 미국인들도 잘 이해를 못하고 있지만, 내 의견으로는 세계사적으로 의미심장한 일 중의 하나가 소위 클린튼 현상 (The Clinton Phenomena) 혹은 클린튼 미스테리이다. 여자 문제로 온갖 세계적 챙피를 다 당하고 쫓겨나기 직전이었던게 바로 어젠데, 어떻게 된 것이 지금 역대 대통령중 재임시 최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힐라리 클린튼마저 상원의원에 나가면 당선이 보장된다는 극치의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한국의 독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미국 사람들도 스스로도 잘 이해하지 못해, 미스테리라고 부르고 있다. 나는 이 미스테리에 대한 하나의 설명을 쓰고 싶어서 이 시리즈를 시작한다. 내 욕심이지만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남한에서는 클린튼을 미국의 도덕 문란의 상징쯤으로 여기거나 좀 봐주더라도 그저 방탕아인데 억세게 운좋은 사내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데 내 의견으로는 전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다. 역시 아직은 내 의견에 불과하지만 클린튼부부는 에이브러햄 링컨, 블라드미어 일리치 레닌, 프랭클린 루즈벨트 정도의 무게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진보적 정치 지망생들에게 정치 관전자로서 클린튼들에 대해 관찰한 바를 좀 이야기 해 주고 싶은 욕망 또한 들어서 이 시리즈를 기획한다.

내가 미국에 온 것이 1992년 5월이었고, 클린튼이 민주당 후보 중의 선두 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시만해도 1992년 정초의 걸프전 승리의 여진을 몰아서 부시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재선을 장담하고 있었다. 나는 클린튼이 결국 5 개월 동안의 치밀한 선거 운동을 통하여 부시를 10%라는 큰 표차로 누르고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매우 큰 문화적 충격으로 지켜보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97 년 영국 노동당수 토니 블레어가 클린튼과 거의 똑같은 정강정책 (platform)과 선거전략 (campaign strategy) 을 가지고 영국 노동당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진보정당 집권 역시 클린튼과 블레어 군단의 정책과 전략을 창조적으로 베낀 것이다. 뿐만아니라 세계 정치의 변두리 남한에서마저 클린튼식 정치 기적이 일어 났다. 야당생활만 40년을 한 남한의 김대중씨가 클린튼과 비슷한 정책과 선거전략을 가지고 죽었다 깨어나도 무너지지않을 것 같았던 경상도 지역패권주의에 바탕한 정권을 무너뜨렸다.

도대체 클린튼의 platform 과 campaign strategy 가 무엇이길래 신대륙, 구대륙,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베끼기만 해도 무조건 다 성공적일까? 더구나 재미있는 것은 일단 정강정책과 선거전략을 클린튼을 흉내내기 시작하면 웬만한 스캔달 정도에는 까딱도 없어진다. 빌 클린튼은 선거때부터 병역 문제, 데모 경력, 여자 문제, 돈 문제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정치 스캔달이 끊이지 않았지만 역경을 모두 이겨냈다. 멀리 갈 것 없이 남한에서도 선거 때마다 한 몫하던 김대중씨의 사상시비나 정치자금 문제도 김대중 진영에서 클린튼 플랫포옴과 선거전략을 채택한 이후에 두리뭉실 넘어갔다.

최근의 하원의 탄핵으로까지 발전한 루윈스키 스캔들까지 철저하게 방어를 해내는 걸로 이젠 사생활 문제로 물고 뜯어온 미국의 치사하고 후진적인 정치 풍토도 좀 없어질 것 같다. 한국사람들은 물론이고, 미국사람들마저 클린튼이 능력은 있지만 도덕적 패륜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인데, 내 생각은 전혀 반대다. 역시 아직은 내 혼자의 의견이지만 클린튼부부는 새롭게 더 높은 도덕의 기준을 제시했고, 구닥다리 좀생이 사이비 도덕주의자들과 싸워 이겨서 새로운 도덕적 기준을 관철해낸 도덕적 귀감으로 기록될 것이다. (왜 그런가는 다른 글에서 쓰겠다.)

여자 스캔들과 관계되어 또하나 재미있는 현상은 클린튼의 여인들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그와의 관계에서 수억을 챙겼다. 예를들면 제니퍼 플라워즈는 토크 쇼에 나갈 때마다 수만달러에서 수십만 달러를 챙기는 명사가 되었고, 폴라존스도 여기저기서 수백만달러를 챙겼으며, 루윈스키도 책을 쓰거나 티비 프로그램에 나가는 걸로 수백만 달러는 챙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클린튼의 여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자 클린튼의 과거 여인들이 배추장사뒤에 상추장사 마냥 나도 클린튼하고 잤다 나도 클린튼한테 성희롱을 당했다고 개나 걸이나 마구 나서는 중이다.

힐라리 클린튼이 손해 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전혀 그것도 아니다. 원래 남편보다 똑똑하다고 적지않은 인기를 누려왔던 힐라리 클린튼은 남편의 배신과 정치적 위기를 우아하고 단호하게 겪어내고 자기 남자 곁을 지켰다고 동정표까지 얻어서 이제는 미국 정치계의 최상의 상품이 되어 있다.

빌 클린튼의 1998년은 위기인거 같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적들이 그를 몰아서 탄핵의 수렁으로 몰아 넣으면 넣을수록 그의 인기는 계속 올라가서 지금은 역대 대통령 중 최상위권이 되어있고, 더구나 힐라리 클린튼의 인기까지 올라가서 2000년에 임기가 끝나면 힐라리 클린튼이 다시 뉴욕 상원의원에 도전한다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힐라리 클린튼의 뉴욕행을 존 에프 케네디가 암살로 죽은 다음 그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도전했던 것과 비유하고 있다. 여론조사결과로는 힐라리가 누구와 싸워도 승산이 있다고 나오고 있다. 오랜 정치 구경꾼인 내 눈에도 힐라리가 뉴욕 상원 의원에 나오면 당선된다고 7-80% 이상은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리버럴한 뉴욕시의 시민들은 78% 라는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상원의원 다음의 정치적 목적지는 당연히 대통령직이다. 아직 50 대 초반인 힐라리 클린튼은 앞으로 25 년은 챈스가 있다. 빌 클린튼의 25 년 정치 역정에서 그를 도와 정상에 오르게 한 다음 이젠 역할을 바꿔서 해보겠다는 게 이들 부부의 포부다. 참 기가막히지 않은가? 부부가 선거에 의해서 대통령을 하는 희대의 사건을 목격할 수가 있을 것인가?

안될일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1997 년 말 루윈스키 스캔들이 터지기 전에 미국인들은 클린튼 대통령을 살아있는 가장 존경하고 사랑할만한 (the most admirable 적당한 번역어?) 남성으로, 힐라리 클린튼을 그런 여성으로 뽑았다. 힐라리는 테레사 수녀와 다이애나빈을 넘었고, 클린튼도 교황을 제쳤던가 그랬다. 하긴 빌 클린튼은 집권초기 조사에세 미국 여성들이 가장 섹스해 보고 싶은 남성으로 탐 크루즈, 케빈 코스트너, 해리슨 포드 등 2,3,4 위들을 한참 제치고 압도적인 1 위를 하기도 했다.

공화당원들이 빌 클린튼을 밀어내려고 안달을 하는 반사작용으로 민주당원들은 전후 어느 때보다도 더욱 단결되어있고 사기가 올라가 있다. 지금 민주당에서는 2000년 선거에서는 대통령, 상원, 하원을 모조리 휩쓸어버리자는 장담까지 간간히 들려온다.

클린튼 현상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왜 이십세기의 최대의 수수께끼 라고 할 만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클린튼을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능력이 없이 그 좋은 운을 자기 걸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는 운이 좋은게 아니라, 운을 만들고 관리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내다. 일단 예일 법대 다닐 때 한학년 위인 힐라리 로담을 꼬셔내서 아칸소로 데려간 것이 그의 첫 번째 운의 관리다. 또 뭐가 있었을까? 하나하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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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튼들의이야기 II : 제3의길


서두:
클린튼들의 이야기 1을 쓴 다음 적지않은 독자들에게서 재미있다, 다음편이 기다려진다. 왜 빨리 2 탄을 안쓰느냐라는 반응이 있었다. 다음 편에서 무엇을 써달라는 의견이 대략 둘로 갈렸다. 우선은 클린튼의 정책 플랫폼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고 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좀더 솔직한 사람들은 클린튼의 섹스 스캔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남자독자들은 전자에 대부분의 여성독자들은 후자에 들어간다. 여성들이 역시 솔직하다. 하지만 역시 수적 열세에 눌려서 클린튼의 정책 플랫폼에 대해 먼저 쓰기로 했다. 이 글은 제3의 길 소개 글일 뿐 아니라 빌 클린튼의 퍼소우너 (persona: 性格, image) 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차례
두가지 에피소드
DLC 의 제 3 의 길
제 3 의 길의 역사적 배경
클린튼과 제 3 의 길

+ + + + + +

두가지 에피소드

남한에서도 상영된 영화 Primary Colors ('삼원색' 혹은 '예비선거의 색깔' 의 중의법)에 나오는 두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사회적 약자 (loser) 들에 대한 빌 클린튼의 정서적 반응과 정책 대안의 방향을 보여주며 그 사회적 약자들과 주위의 인물들이 클린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클린튼이 민주당 대통령후보 주자로 뉴욕의 공공 도서관의 성인문맹퇴치교실을 방문한 날의 이야기다. 선거참모들은 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공공도서관 문맹퇴치교실에서 보내는 몇 시간을 아까워 하지만 클린튼은 어느 도시든 가기만 하면 공공도서관을 꼭 찾는다. 그 날은 한 문맹 남자의 얘기를 듣다가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튼이 울어버린다.

선거 전략가로 그날 부임한 한 흑인 정치컨설턴트는 그걸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아, 이 사내는 일반 인민을 마음 속 깊이 동정하는 (care about) 연민이 있는 (compassionate) 정치가구나. 그런데 클린튼은 고 짧은 시간에도 그 도서관의 문맹퇴치교실의 여자 책임자를 꼬드겨서 그녀가 그날 밤 호텔로 클린튼을 찾아온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대통령 선거 전쟁의 첫 번째 고지 전투로서 뉴 햄프셔 민주당 예비선거의 선거유세 마지막날의 이야기다. 제니퍼 플라워즈가 클린튼과의 12 년 혼외정사사건을 공개하고, 클린튼의 마리화나 흡연 사건, 병역 기피문제, 영국의 미대사관 앞에서 벌였던 월남전 반전데모 참가 사건 등이 문제가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린튼의 정치 생명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적지 않은 선거 참모진마저 떠나버려 황량한 뉴 햄프셔의 선거본부에서 클린튼은 남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지금부터 나는 가장 격렬한 선거운동을 하겠다. 그리고 연설을 하러 나선 곳이 얼마후에 문을 닫기로 되어있는 조선소이다.

노동자들 앞에서 클린튼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조선소 문을 닫지않게 할 능력은 없다. 그걸 바라지는 말아달라. 하지만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한 가지는 분명히 약속 하겠다. 매일 아침마다 당신들에 대해서 생각하겠다. 다시 이 조선소 문을 여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신들 양미간 사이에 있는 근육, 손, 발의 근육이 아니라 두뇌 근육을 훈련하는 걸 지원해서 새로운 경제에서 당신들이 좋은 직장을 잡고 잘먹고 살게 할수 있나에 대해 매일 아침마다 생각하겠다. 그걸 약속한다.”

진실은 사기보다 훨씬 깊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클린튼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폴 송거스에 이어 2위를 한다. 일등도 못한 주제에 승리를 주장하며 하는 소리가 뉴 햄프셔 유권자들이 이 빌 클린튼을 오뚜기로 (comeback kid) 만들어 주었다.

“감사하다. 꼭 대통령에 당선되겠다.”

요 오뚜기 정신은 최근의 루윈스키 스캔들까지 클린튼의 정치역정에서 아주 두드러지는 요소이다. 그는 철저한 낙관주의자고 낙관을 현실로 만드는 정열과 능력이 있다.


DLC 의 제 3 의 길

빌 클린튼의 퍼소우너 (persona) 와 딱 맞아 떨어지는 정치사상이 미민주당지도위원회 (DLC, Democratic Leadership Council, http://www.dlc.org)에서 만들어 지고 있었다. DLC 산하 진보정책연구소 (PPI, Progressive Policy Institute, http://www.ppionline.org) 의 Will Marshall 과 그의 열아홉명의 스텝은 지미 카터, 마이클 뒤카키스가 레이건에게 진 것은 선거전략의 문제나 후보 개인들의 능력부족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는 근본적 실패는 지적인 문제 (Fundamental failure is intellectual) 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지적인 작업을 해내고, 그 결과는 일련의 논문들에 바탕한 새로운 정책 플랫포옴이다. 이것이 클린튼 대통령직과 토니 블레어의 수상직의 기반이 된 제3의 길의 플랫포옴의 출발이다. 타임지의 기자 마이클 크래이머는 클린튼이 아직 부시의 뒤를 쫓고 있을때인, 1992년 5월에 그의 칼럼 "클린튼 뒤의 두뇌들 (The Brains Behind Clinton)" 에서 클린튼이 DLC 의 PPI 의 논문들을 도매로 사들였다고 평한다.

이 때 클린튼은 교육문제와 복지정책에 대해 전통적 민주당의 노선인 무조건적인 지원에서 탈피하여 기회의 제공, empowerment (번역어?), 책임 등을 강조하게 된다. PPI 의 노선은 그들의 1996 년 문건인 '새로운 진보주의 선언: 정보화시대의 정치사상 (The New Progressive Declaration : A Political Philosophy for the Information Age)'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으니까 관심있는 독자는 웹페이지에 가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기서는 그 핵심만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다.

우선, 이 PPI 문건은 거대 국가기구에 의존한 위로부터의 가부장적 지원 체계 (top-down paternalism) 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대신 새로운 진보적 정치강령은 기회의 균등, 상호 책임, 그리고 자율 (equality of opportunity, mutual responsibility, and self-governance)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의 에피소드들과 관련시켜 얘기하면 문맹자들에게 국가가 생활비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교육을 하고 직업을 알선하는 일이 국가의 책임이며 이런 국가의 지원을 받은 시민은 새로운 일을 성실하게 창조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책임이다. 또 이미 일본과 한국의 조선소에게 경쟁력을 잃은 조선소를 억지로 관세장벽을 세우거나 세금으로 보조금을 주어 지탱하게 하여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적 요구에 맞게 새로운 노동력을 익힐수 있도록 기회를 찾는 걸 국가가 도와주고 노동자들도 발전하는 경제적 요구에 의해서 자신의 기능을 전화 향상 시킬 책임을 지는 것이다.

DLC PPI 의 문건을 소개하는 것 보다 빌 클린튼이 차별철폐를 위한 적극적 조치 (Affirmative Action) 의 존속과 개혁을 주장하면서 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더 대중적으로 이 새로운 노선을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은 세 가지 원리에 의해서 지금같은 강국이 되었다. 그 것은 첫째 기회의 균등, 둘째 능력에 따른 승진, 셋째 그리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그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equal opportunity, promotion according to merit, and help for the people in need) 우리가 세 번째 원리를 무시하고 Affirmative Action 을 철폐한다면 사실은 첫째 원칙도 둘째 원칙도 무시하는 것이다.


제 3의 길의 역사적 배경

제 3 의길은 19 세기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도, 20 세기의 국가주의 경제도 이제 수명이 끝났고 21 세기 경제사회에서는 새로운 정치 강령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쩌면 낯선 얘기중의 하나가 경제선진국들의 19세기 경제체제와 20 세기, 특히 전후 미국 소련의 이차대전 승리로 세계적으로 전일화된 무척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런 변화를 지적으로 선도한 사람들은 19세기의 맑스 엥겔스와 20 세기의 케인즈이고, 이 변화과정을 아주 잘 포착하여 기술한 책이 카알 폴냐니의 <The Great Transformation> 이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선, 두드러지는 것은 경제에 있어서의 국가부문의 비중의 증가이다. 나라 경제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19세기의 3-5% 남짓에서 이차대전 후에는 미국 일본의 30% 로 부터 유럽나라들의 40-60% 에 이르기까지 자릿수가 (order of magnitude) 달라진다. 둘째, 국가가 시장기구의 조절에 강력하게 나선다. 이것은 통화재정정책을 통해 서 그리고 법률제정과 감시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한)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셋째 국가가, 직접 관장하는 국영기업들이 특히 후발산업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엥겔스가 다시 태어난다면, 내 생각으로는 지금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사회주의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국가주의적 변화를 이끌어 낸 대표적 정치가들이 미국의 윌슨, 루스벨트 등의 민주당 대통령들, 소련의 레닌과 스탈린이다. 유럽은 일차대전이후부터 노동당과 사민당 세력에 의해 이런 국가주의적 경제체제가 자리를 잡고, 일본은 독특하게 자민당과 관료 연합에 의해 이런 국가주의적 경제체제가 자리를 잡는다. 그러니깐 미국의 민주당, 소련의 공 산당, 그리고 유럽의 사민주의 세력이 이런 변화의 주역으로서의 정치세력인 것이다.

잠깐 지루하지만 어떤과정을 통해 19세기의 자유방임주의가 국가주의적 경제체제에 자리를 내주는 가를 살펴보자. 19 세기의 자유방임주의는 방적기 부터 증기기관까지 소규모 기업 위주의 생산력단계와 잘 맞아 떨어지는 정치사상이다. 이런 소자본자본주의체제는 몇가지 기술적 변화에 의해서 대자본 독점제제로 변화하게 된다. 이런 몇가지 기술적 변화를 선도한 나라들이 미국과 독일이고 이 두 나라는 이미 20 세기 초에 둘다 영국의 공업생산력을 넘어선다.

또 미국과 독일을 부지런히 배운 일본이 1920-30 년 경부터 선배들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무슨 기술적 변화가 있었는가는 나중에 토론토대 역사학과 기술사학자 홍성욱의 강의를 듣거나 하바드 경영대학원의 비지니스 역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의 책 <Visible Hand>을 잘 읽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결과만 보자. 기술적 변화란 뭐 별건 아니고, 화학공업, 전기공 업 등 과학기술의 결합, 철도 전신 전화 대규모 통신 수송수단의 발달, 테일러 포드의 과학적 경영기법, 금융기법의 발달 등을 말하는 것이다.

암튼 이런 모든 기술적 변화의 결과는 대규모 기업과 그 지배자들의 탄생이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만 나열해 봐도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철도왕 반더빌트 가문, 그리고 금융왕 모건 등이 이 기술적 변화의 기회를 잡아 재벌이 된 사람들이다. 약간 후발의 독일과 일본에서도 이런 재벌들이 탄생한다. 일본의 미쓰이 가문, 미쓰비시 가문 등 우리가 잘 아는 이름들이 바로 이런 재벌들이고, 재벌이란 이름 자체가 일본어의 재바쯔(財閥)에서 기원한다.

19 세기의 낡아 빠진 경제체제 특히 금본위제와 자유방임적 경제체제는 새로운 경제발전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결국 세계 민중을 1930년대 대공황의 고통으로 몰아넣고 조종을 울린다. 이 때 대략 세가지 대안이 나오게 되는데 각각 미국의 노선, 소련의 노선, 그리고 독일-일본의 노선이 달라진다.

미국은 19세기말부터 반독점법, 이십세기 윌슨과 루스벨트 치하의 은행법 등을 통해 민주적 국가기구가 서서히 모건을 잡아넣고 하면서 재벌들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노동계급은 이때 국가기구의 편에 서서 재벌개혁에 동의하고 정치세력으로 성장한다. 반면에 독일-일본은 재벌 세력이 나찌즘이나 군국주의자들과 결합 국가기구를 찬탈하여 노동운동과 민주적 제도들을 철저히 억누르고 국가기구를 전체주의적으로 편재한다. 경제후진국이었던 소련은 볼세비키가 아예 국영 대규모 기업들을 창설하고 테일러리즘을 열광적으로 수입하여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한다.

아무튼 자유방임적 영국이 급속히 쇠퇴하고 새로운 국가주의적 미국, 일본, 독일, 소련이 이십세기 전반을 풍미하는 것은 새로운 생산력단계에 조응하지 못한 자유방임적 경제체제를 제치고 국가주의적 경제체제가 승리해 가고 있음을 웅변한다. 이차대전은 미국-소련 등의 국가 엘리트 헤게모니하의 나라들과 독일-일본의 재벌-파시스트 전체주의 나라들간의 20 세기 패권을 겨룬 대결투였다.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와 독일을 점령한 패텡은 파시스트 전범을 처벌하는 것 만이 아니라, 그 파시스트 세력의 물적 기반이 된 재벌 세력을 청소한다.

냉전은 독일과 일본의 파시스트-재벌 체제를 청소한 주역인 미국과 소련의 국가주의 엘리트간의 대결이다. 미국의 국가주의 엘리트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자마자 급속히 그 진보성을 상실해 가는데, 그들의 보수화에 대한 분석이 1950년대에 하바드의 C. Wright Mills 의 <Power Elite>에서 이미 발견된다. 미국의 50년대의 매카시즘과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제국주의적 행태는 이 국가 엘리트들의 역사적 수구성을 증명하는 일들이다.

그래도 이차대전 후 1950-60년대의 세계 경제의 부흥기는 바로 이 국가주의 경제체제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에 미국은 물론 독일의 재벌체제를 해체하고 미국식 체제를 이식한 서유럽도 보수당과 사민주의 정권이 교대로 집권하면서 최대의 경제부흥기를 맞게된다. 소련과 그 체제를 이식한 동유럽도 엄청난 경제성장을 목격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국가주의 파워엘리트 경제는 1973 년 일차 오일쇼크를 얻어맞고 휘청거릴때까지 승승장구했다.

미국과 서구에서 국가주의에 대한 정치적 저항은 1960년대 미국과 서유럽의 학생운동으로 부터 시작된다. 미국 학생운동의 세계사적 진보성을 웅변하는 것은 학생들이 국가주의 엘리트들의 반동적인 제국주의 노선의 결과인 월남전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건이다. 심지어는 학생 대표가 하노이까지 날아가서 미국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결국 학생들의 반전운동은 승리하고 미국의 시민사회는 오만한 국가주의 엘리트들은 일정정도 견제하게 되는 성과를 얻었다. 최초의 반전운동 세대 대통령인 빌 클린튼이 로드 스칼러로 영국 옥스포드에 유학하고 있을 때 미 대사관앞에까지 가서 반전운동을 한 성과가 있게 된 것이다. 노동 계급은 미국에서도 서유럽에서도 그리고 소련과 동구에서도 지속적으로 국가 엘리트들과의 동맹세력이었고, 그래서 일본-독일의 파시즘을 궤멸시키는 데는 위대한 업적을 쌓았으나 1960년대 이후 반국가주의적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에 동참하지 않음으로서 역사적 진보성을 일정정도 상실한다.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은 1970년대까지는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 등의 형태를 띠었고 권력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제대로된 정치운동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이것은 동구와 미국 서구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러한 세계사적 대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낡아빠진 19세기식 진보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로 위대한 진보적 역사관을 헌신짝 버리고 어설픈 혁명적 낭만주의에 빠져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DLC 지도자 윌 마샬의 지적대로 근본적 문제는 지적인 문제였다. (Fundamental failure is intellectual) 소련과 동구는 아예 국가주의가 전혀 대안을 갖지 못한채 내부폭발 (implode) 해버린 경우다.

미국과 영국에서 진보진영의 이런 사상적 공백을 메운 것이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다. 소위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는 조금 더 확대된 개념이다) 이념은 이십세기에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국가기구를 축소하고 19세기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민사회에 부와 권력을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보수주의자들의 역사성 부족은 바로 20 세기의 문제점을 고치려고 19 세기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서 보여진다. 하지만 진보적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적어도 20세기의 문제점을 정확히 물고 늘어지는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새로운 계급인 지식노동자층이 지지를 보내게되어 대처-레이건-부시-메이저로 이어지는 신보수주의자들의 천국이 이어지는 것이다.

제 3 의 길은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탄생한다.

20 세기 국가주의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19세기 자유방임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된다. 21 세기 진보이념을 만들고 정책플랫폼을 건설하자. 미국 민주당 지도위원회와 진보정치연구소의 20명 젊은 지식인에게 떨어진 사명이고, 클린튼은 새로운 진보이념의 메시지 (message) 를 미국 국민과 세계 인민에게 전하는 메신저 (messenger) 로 다시 태어난다.

by 곽MANIA | 2006/12/26 14:01 | 정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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